허생전 중 '허생과 이완의 대화'

(YES24에 있는 어느 책표지)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許生傳)은 초등학생 때부터 여러 번 읽었습니다.

처음에는 과일과 말총을 싹쓸이(매점매석)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좀더 커서는 도적들을 무인도에 데려가는 부분이 눈에 더 들어왔습니다.

그러다가 10년쯤 전에 어느 친구가 마지막 부분의 '허생과 이완의 대화' 부분에 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부분이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급히 찾아서 읽었습니다. 그 후로는 이 부분이 가장 크게 와닿습니다.

아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http://goo.gl/sfh4gc 에서 그 '허생과 이완의 대화' 부분을 아래에 옮깁니다. (분량을 줄이기 위해 조금 간략하게 했습니다만 말하는 내용은 줄이지 않았습니다.)

어영대장 이완(李浣)이 허생을 찾아와 병자호란 때 겪은 치욕을 갚을 방법을 얻고자 합니다. 허생은 "내가 와룡 선생(臥龍先生) 같은 이를 천거하겠으니, 네가 임금께 아뢰어서 삼고초려(三顧草廬)를 하게 할 수 있겠느냐?" 하고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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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이 어렵다며 다른 계책을 달라고 하니, 허생이 하나 더 이야기를 해줍니다. "명(明)나라 장졸들이 조선은 옛 은혜가 있다고 하여, 그 자손들이 많이 우리나라로 망명해 와서 정처 없이 떠돌고 있으니, 너는 조정에 청하여 종실(宗室)의 딸들을 내어 모두 그들에게 시집보내고, 훈척(勳戚) 권귀(權貴)의 집을 빼앗아서 그들에게 나누어 주게 할 수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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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이 이번에도 어렵다고 하니, 허생이 가장 쉬운 것을 말해주겠다고 합니다. "무릇, 천하에 대의(大義)를 외치려면 먼저 천하의 호걸들과 접촉하여 결탁하지 않고는 안 되고, 남의 나라를 치려면 먼저 첩자를 보내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는 법이다. 지금 만주 정부가 갑자기 천하의 주인이 되어서 중국 민족과는 친근해지지 못하는 판에, 조선이 다른 나라보다 먼저 섬기게 되어 저들이 우리를 가장 믿는 터이다. 진실로 당(唐)나라, 원(元)나라 때처럼 우리 자제들이 유학 가서 벼슬까지 하도록 허용해 줄 것과, 상인의 출입을 금하지 말도록 할 것을 간청하면, 저들도 반드시 자기네에게 친근해지려 함을 보고 기뻐 승낙할 것이다. 국중의 자제들을 가려 뽑아 머리를 깎고 되놈의 옷을 입혀서, 그 중 선비는 가서 빈공과(賓貢科)에 응시하고, 또 서민은 멀리 강남(江南)에 건너가서 장사를 하면서, 저 나라의 실정을 정탐하는 한편, 저 땅의 호걸들과 결탁한다면 한번 천하를 뒤집고 국치(國恥)를 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명나라 황족에서 구해도 사람을 얻지 못할 경우, 천하의 제후(諸侯)를 거느리고 적당한 사람을 하늘에 천거한다면, 잘 되면 대국(大國)의 스승이 될 것이고, 못 되어도 백구지국(伯舅之國)의 지위를 잃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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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듣고 이완은 힘없이 말합니다. "사대부들이 모두 조심스럽게 예법(禮法)을 지키는데, 누가 변발(辮髮)을 하고 호복(胡服)을 입으려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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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허생은 크게 꾸짖습니다. "소위 사대부란 것들이 무엇이란 말이냐? 오랑캐 땅에서 태어나 자칭 사대부라 뽐내다니 이런 어리석을 데가 있느냐? 의복은 흰 옷을 입으니 그것이야말로 상인(喪人)이나 입는 것이고, 머리털을 한데 묶어 송곳같이 만드는 것은 남쪽 오랑캐의 습속에 지나지 못한데, 대체 무엇을 가지고 예법이라 한단 말인가? 번오기(樊於期)는 원수를 갚기 위해서 자신의 머리를 아끼지 않았고, 무령왕(武靈王)은 나라를 강성하게 만들기 위해서 되놈의 옷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이제 대명(大明)을 위해 원수를 갚겠다 하면서, 그까짓 머리털 하나를 아끼고, 또 장차 말을 달리고 칼을 쓰고 창을 쓰고 창을 던지며 활을 당기고 돌을 던져야 할 판국에 넓은 소매의 옷을 고쳐 입지 않고 딴에 예법이라고 한단 말이냐? 내가 세 가지를 들어 말하였는데, 너는 한 가지도 행하지 못한다면서 그래도 신임 받는 신하라 하겠는가? 신임 받는 신하라는 게 참으로 이렇단 말이냐? 너 같은 자는 칼로 목을 잘라야 할 것이다."

제가 일을 하면서 이완처럼, 또는 이완으로 대표되는 집단처럼 생각하거나 행동하지 않기 위해서 늘 조심하고 걱정도 합니다. 이 부분을 앞으로는 더 자주 읽으려 합니다.

(2014년 5월 11일, 석파랑에서)

댓글

  1. 우연히 형님 블로그에 왔다가 이렇게 댓글을 남깁니다. 허생전에서 허생과 이완대장의 대화는 실제 당시 상황을 풍자한 것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노론의 영수로서 북벌을 강력히 추진했다고 알려지는 우암 송시열도 기록에 따르면 진심은 북벌에 전혀 뜻이 없었다고 합니다. 단지 다른 당파를 공격하기 위한 명분으로 이를 내세웠을 뿐이었죠. 이들은 연암 박지원이나 반계 유형원같이 청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선진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실학자들을 청을 찬양하는 변절자 취급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은 이 기준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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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여기서 다시 봐서 반가워요. 남겨준 글 잘 읽었어요. 나는 우리 사회에서 '지도층'이라는 말의 의미가 급속히 옅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한편, 이 글은 내 블로그 내의 다른 글들보다 유난히 많은 반응을 얻었더군요. '지도층'이라 불리는 사람들 중에서 얼마나 자유로운가보다, 일반인들 중에서 이 글에 큰 반응을 보인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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